새벽이다. 글 쓰기 참 좋은 시간이지만, 글을 쓰지 않으려 했던 시간. 자야겠다는 생각은 있으나, 눈꺼풀은 감을 생각을 하지 않아 핸드폰을 뒤적거렸다. 관심도 흥미도 없는 글과 그림들을 슥슥 훑었다. 그러다 유튜브에서 '지친 이들을 위한 우울한 노래'(아마도 그런 제목의)를 눌렀다.
요즘 나는 어떠했었지. 1월에는 바쁘게 영어학원을 다녔다. 이 글을 쓰는 지금은 2월 5일. 달력을 보니 1월이 지난지는 고작 일주일도 되지 않았다. 그리고 그 '고작'의 시간동안 나의 하루는 절벽에서 추락하듯 달라졌다. 영어학원을 다녔을 때는 학원을 갔다가. 몸이 버티지 못해 잠깐 잠을 자고. 일어나자마자 과제를 하고. 그러다 새벽 3시쯤이 되면 몸이 버티지 못해 과제를 다하지 못하고 다시 잠에 들었다. 그리고 아침 8시에 벌떡 일어나서 학원을 가고. 뭐 그런 하루하루였다.
그렇게 1월을 '겨우' 살다가 2월이 되었다. 아침 8시쯤 잠에 들고. 12시에 일어나 아침겸 점심을 먹고. 다시 자고. 저녁 6시쯤 저녁을 먹고. 그리고 침대에 누워 다시 아침 8시까지 누워있다가 잠에 든다. 일주일도 안되는 시간이었다. 그런 나를 지켜보던 엄마는 제발 좀 자지 말라고. 그만 자라고. 내게 다그쳤다.(진짜로 다그친 건 아닐지도 모른다. 아무튼 나는 그렇게 느꼈다.) 그래서자는 거 가지고 눈치 주지 말라고. 왜 쉬는 것도 못하게 하냐고. 나름 가볍게 넘겼다.(그렇다. 나는 불효자다.)
어제처럼 그리고 어제의 어제처럼 침대에 다시 누워있다가. 화장실에 가는데 허리가 아팠다. 허리를 구부리기가 힘들고 몸이 굳은 느낌이 났다. 아. 엄마 말이 맞았다. 나는 그만 자야한다. 그만 누워있어야 한다. 하지만 침대에 다시 붙자 일어나고 싶지가 않았다. 머릿속에서 이런 저런 소리가 맴돌았다.
"싫어. 눕고 싶어. 쉬고 싶어."
"아냐. 일어나자. 이러다 진짜 큰일 나겠어."
"왜. 나 진짜 힘들어. 제발. 혼자 그대로 냅둬줘."
그러다 문득. 아. 내가 힘든가.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 때 핸드폰에서는 '지친 이들을 위한 우울한 노래'가 흘러 나왔다.
나는 내게 물었다.
"너 요즘 어때. 괜찮아?"
"... 아니. 글쎄. 그냥. 아무것도 안될 것 같고. 아무것도 하기 싫고. 사람 숨소리만 들어도 마음 속에서 생채기가 날 것 같아. 별일이 없는 것 같는데. 나도 내가 왜 그런지 모르겠는데. 아무튼 그래."
번아웃 증후군. 아무 곳이나 검색해보면 한 두문장의 사전적 정의가 나온다. 두 글자로 간단하게 말하면 '지침'. 어느 순간부터 나는 끝없이 반복되는 번아웃에 시달렸다. 지쳤다가. 해야 하기 때문에 일어나서 억지로 무언가를 하다가. 다시 버티지 못해 번아웃을 하다가. 다시 일어났다가. 다시 주저앉고. 그것이 반복될수록 그 주기는 짧아졌다. 그리고 억지로 일어나는 것은 더욱 힘겨워졌다.
머릿속에서는 가장 오랫동안 나를 이끌어왔던 엄격한 목소리가 이러면 안된다고. 해야할 것들이 눈앞에 쌓여있는데 다시 일어나라고 외쳤다. 하지만 반항심인지 번아웃인지 모를 것 때문에 몸이 머리를 따라가지 못했다. 그러다가 정말 머릿속에서 들리는 그 엄격한 목소리가 정말 내 목소리일까하는 생각이 의심이 들었다. 꼭 그걸 해야 하나. 정말 내가 그걸 원하나. 마음은 더욱 복잡해졌다. 그러다가 뭔지는 모르겠지만 이 상태가 오래가면 안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 나는 뭘 해야하지. 방법이 있을까. 고민하다가. 벌떡 일어나서 노트북을 켰다. 그리고 지금 이 글을 써 내려가고 있다.
사실 나는 나를 꺼내서 보여주는 일에 굉장히 서툴다. 잘 맞지 않는다. 그래서 인터넷 상에서 글을 쓰는 것에 대해서 오랫동안 갈망하면서도 망설였다. 뭔가 엄청 계획적이어야하고. 괜찮아야하고. 그래야할 것 같았다. 나는 서툰 사람이니까. 라는 변명으로 지금까지 써오지 않았다. 그런 내가 노트북 키보드를 타닥타닥 누르고 있는 이유는 달라지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이다. 달라지는 것이 지금의 숨막히는 기분에서 조금이라도 나갈 수 있는 방법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계획적이지 않고. 생각하지 않고. 그냥 뱉어내보고 싶다.
어쩌면 이곳에서 쓰는 글들은 친절하지 않은 글일지도 모른다. 어느순간 마음을 바꿔 한순간에 사라질지도 모른다. 하지만 누군가. 지금의 나같은 누군가가 나의 글들을 읽고. 저런 인간도 있구나. 나도 어쩌면 괜찮아질 수 있지 않을까. 라며 아주 조금. 정말 조금이라도 위안을 받았으면 좋겠다.